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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을 회고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을 회고하며…

<독자투고>
‘광주민주화운동’을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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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6년 전 전라남도 광주에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을 비롯해 계엄철폐 등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신군부가 일방적으로 전남대에 발령한 휴교령이 시작됐던 5월18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시위는 처음에는 휴교령에 항의하는 단순한 시위였지만 계엄군이 유혈진압을 시작하면서 점차 시민운동으로 확대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한 체육관 선거로 제11대 대통령에 올랐던 전두환 정권하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은 서울대학교 대자보를 인용해 ‘광주사태’ 혹은 ‘광주소요사태’로 불리기도 했다.
시대적, 역사적 차원에서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후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가 시국수습이라는 명목하에 제주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 내려졌던 계엄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던 전국 37개 대학 학생들과 김대중, 김종필 등 정치인들과 다수의 재야인사들이 체포되면서 정국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광주에서 시민들이 계엄군과 충돌하자 신군부는 5월27일 무장한 계엄군 2만5천여명을 투입하면서 사건을 종결시켰다. 당시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사망자는 193명(군인 23명, 경찰 4명, 민간인166명)이었다. 전쟁이 아닌 일반적인 시위를 통해 발생한 사상자 규모로서는 현대사에 길이 남을 기록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공식적으로 부상자의 숫자도 852명에 이르렀는데, 당시 전두환 정권은 광주에서 발생한 시위에 대한 책임을 당시 재야인사였던 김대중씨에게 물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에서 ‘역사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5.18특별법이 제정되기에 이른다.
결국 5.18광주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이 민주화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70년대까지 일부 소수 지식인층이 주도해 왔던 민주화운동이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운동으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데 또 다른 의의가 있다고 본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지난 1997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되면서 정부주관으로 기념행사가 열려오고 있지만, 4년전부터는 기념행사 진행과 관련해 잡음이 나오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지역갈등까지 조장하려는 시도도 있어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역사는 흐른다. 하지만 상처받은 누군가의 가슴에는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지만 결코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저 역사의 아픈 순간으로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 한층 발전된 민주주의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세일 것이고 또한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국민이 먼저냐 국가가 먼저냐는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저마다가 견해를 달리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성취되는 것은 아닐까.

<최영기 휴스턴한인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