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칼럼 차대덕 우리들 삶의 모습 시리즈
Form of Our Lives Series
우리들 삶의 모습 시리즈Form of Our Lives Series

우리들 삶의 모습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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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후회가 없기를 바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입니다. 물론 좋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개중에는 싫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불편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며, 더욱이 피해를 입히거나 해악을 끼치려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여기에 넓은 마음까지 소유한 사람들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희망과 비교했을 때 자신은 과연 좋은 사람이 되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묻게 됩니다. 우리들 스스로는 변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으면서 늘 상대방이 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상대방을 배려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먼저 자신을 배려해 주기를 바랍니다.
길을 걷다가, 혹은 우연한 장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상대방이 먼저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와 공손히 인사하기 바라지는 않습니까.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즐겨 먹는지 먼저 알고 대접해 주길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대방이 먼저 다가와 호감을 나타내지 않거나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짜증을 내거나 빈정이 상해 “세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느냐”고 화를 내신 적은 없습니까.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독선(獨選)적입니까? 언제부터인가 자신도 모르게 잘못된 사고와 행동이 관계를 단절시키고 우리의 미래까지 어둡게 하는지 생각하면 숨이 막혀 올 때도 있습니다. 또한 이런 독선적 사고와 행동이 좋은 사람들을 많이 살아가야할 세상을 오염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저어합니다.
대접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때 불현 듯 노여움이 마음 속 잠금장치인 체면을 풀고 나오려 할 때 나는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배가 고팠던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곤 합니다. 피죽 한 그릇 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로 채운 배를 움켜쥐고 잠을 청했던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정말 배가 고프고 삶이 고단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때와는 사정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잘 살아보겠다는 진정한 노력은 없이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더욱이 무엇인가 허상(虛想)을 쫓거나 사리분별도 못하고 그저 일확천금을 노리는 탐욕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 걱정됩니다.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욕심을 부리는 자들이 난무한 요즘의 세태에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못 먹고 고생하던 그 시절에도 우리들 못가진자들은 더 어려운 이웃에게 자기 밥 한 숟가락 기꺼이 내주었던 정말이지 인간냄새가 났던 순수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렴풋한 그 옛날 그 시절이 간절히 생각나는 요즈음 서산대사의 선시(禪詩)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기는 이 발자국은 뒤에 따라오는 이가 이정표로 따를 것이니라.”
비록 잠시 머물다가 가는 세상이라지만 후대에 부끄러운 모습은 남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믿습니다. 지금의 이 어려운 상황(狀況)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면 우리는 새로운 나의 조국을 맞이할 것이며 우리들 후세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우리에게 고마워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난 2000년 로빈슨갤러리(Robinson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에 전시됐던 작품이 떠올랐습니다. 이 칼럼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당시 “우리들의 삶의 모습들…”이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전시됐던 작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얀 캔버스 위에 미리 그어진 사각형의 구조는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회적 규범이거나 윤리적 속박과 같이 일상생활(삶)속에서 느껴지는 압박 등 여러 가지 가치기준, 즉 구속을 의미합니다.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먼저 화폭을 바닥에 눕혀 놓고 물을 뿌린 후, 물감을 떨어뜨리면 물감이 아주 천천히 번져가면서 마르는데, 물감이 마를 때까지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한, 물감이 다 마를 때까지 어떠한 형상의 변화가 생겨나는지 전혀 가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몇 차례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보면 미처 계산치 못한 생소한 형상이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때 우리들 인생사도, 그리고 세상만사도 자기 뜻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결국엔, 보이지 않는 힘, 자연의 섭리(하늘의 뜻)에 의해 인생의 모습이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점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수십 개, 수백 개, 수천 개의 형상을 만들어도 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은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사실을 보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반경을 잠시만 둘러봐도 만나는 한사람, 한사람이 모두 다르듯 각자가 지나온 생활 속에서 성장배경, 교육과정, 가치판단의 차이로 얼마나 많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가 저마다 지나온 생로병사의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어떤 사건 하나를 대하는 태도나 해석하는 방식 또한 극명하게 다른 형태로 반응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만큼 저마다의 생각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적대시하거나 반목하는 행동은 삼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다보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져 궁극에는 공통된 합의점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의 작품에서 설명했듯이 좋은 작품, 또는 좋은 삶이란 억지로 만들려는 무모함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하늘의 원칙대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진리 앞에 진정으로 겸손해지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제목: 우리들 삶의 모습들
크기: 50″X36″
재료: Acrylic on Canvas

<차대덕 재미화가>